교토(京都) – 전통과 사찰의 도시
첫날 – 아라시야마에서 숨 고르기
여행의 시작은 교토 외곽의 아라시야마였다. 기차를 타고 가는 길부터 창밖 풍경이 달라졌다. 높은 빌딩 대신 낮은 기와집, 번쩍이는 간판 대신 연둣빛 나무가 길 양옆을 채우고 있었다.
역에서 내려 조금 걷자, 대나무숲 입구가 나타났다. 평일인데도 관광객이 꽤 있었지만, 대나무숲 안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가 조용해졌다. 하늘 높이 솟은 대나무 사이로 바람이 스칠 때, 무슨 이유에선지 깊은 숨을 쉬고 싶어졌다.
나는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사진을 찍기보단,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다. 그저 바람 소리,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아주 가끔 들려오는 발소리뿐. 그 고요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강을 따라 도게츠교를 건너 작은 찻집에 들렀다. 달콤한 말차와 화과자를 한 입 물었을 뿐인데, 그 순간 교토에 온 게 실감났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주변이 고요해질 때 비로소 ‘지금 여기’에 있다는 감각이 선명해졌다.
둘째 날 – 기요미즈데라의 단풍과 내려다본 교토
다음 날 아침, 기요미즈데라로 향했다. 기온 쪽에서 걸어 올라가는 돌계단 길은 양옆에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걷고 있었고, 작은 기념품 가게나 전통 간식점들도 이어져 있었다. 관광지 분위기이긴 했지만 교토답게 조용하고 절제된 느낌이 강했다.
사찰 입구를 지나 나무로 된 넓은 무대에 올라섰을 때, 한순간 시야가 확 트였다. 붉게 물든 단풍들 사이로 교토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고, 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마치 한 장의 수묵화 같았다. 나는 말없이 오래 서 있었다.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고, 그냥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 공간이 주는 감정이 너무 고요하고, 묘하게 따뜻했기 때문이다.
사찰을 둘러본 뒤, 근처에서 먹은 유도후(湯豆腐)는 간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부드러운 식감, 미소국, 절임반찬, 모든 게 정갈하고 차분해서 식사를 한다기보단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 같았다.
셋째 날 – 후시미 이나리에서 나와 마주하다
셋째 날은 이른 아침부터 후시미 이나리로 향했다.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한 시간, 사람이 적을 때 도리이 사이를 걸어보고 싶었다.
수천 개의 붉은 도리이 안을 걷는다는 건 생각보다 묘한 경험이었다. 복잡한 도시의 소음은 사라지고, 붉은 기둥과 그림자만이 반복되는 통로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내 안으로 들어갔다.
걸을수록 계단은 많아졌고, 땀도 나고 숨도 찼지만 이상하게 힘들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는 너무 바쁘기만 했구나.” 그 순간, 걸음을 멈추고 잠시 앉아 등 뒤 숲을 바라봤다. 말없이 흘러가는 바람 속에서 나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유부초밥 가게에서 뜨끈한 국물과 함께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그 따뜻한 국물 한 모금이, 마음까지 데워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넷째 날 – 기온,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거리
여행 마지막 날 저녁, 기온을 걸었다. 낮보다 밤이 더 교토다운 동네라는 말이 실감났다. 길가의 전등불이 하나둘 켜지고,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조용히 걸어갔다. 그 중엔 진짜 마이코도 있었고, 사람들은 조용히 길을 터주며 바라볼 뿐 소란스럽게 구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골목 끝 찻집에 들어가 말차를 주문했다. 조명이 어두운 실내, 나무로 된 바닥에서 은은하게 울리는 음악, 그리고 조용한 직원의 말투. 그 공간 전체가 마치 시간 밖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말차를 마시면서, 문득 ‘교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얼마나 소중한 감정인지, 바쁘게 살아온 나에겐 정말 특별하게 다가왔다.
교토는 조용히 마음을 흔드는 도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엔 항상 많은 걸 보고, 먹고, 찍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교토에서는 달랐다.
계획대로 다 가지 못해도 괜찮았고, 유명한 맛집을 놓쳐도 별로 아쉽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걷고, 숨 쉬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곱씹었다. 교토는 그렇게 여행자에게 속도를 늦추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시였다.
돌아오는 길, 기차 창밖으로 보이던 풍경이 점점 멀어질수록 나는 또다시 다짐했다. 언젠가 교토에 다시 오자고. 그땐 아마 계절이 바뀌어 있겠지만, 교토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조용하게,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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