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札幌) – 눈과 따뜻한 국물, 그리고 여유를 만나다
오도리 공원 – 도심 속에서 만난 겨울
여행의 첫 발걸음은 오도리 공원에서 시작했다. 삿포로 시내 중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이 공원은 계절마다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데, 내가 방문했을 땐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아 있었다. 마침 삿포로 눈축제를 앞두고 있어 조형물들이 세워지고 있었고, 그 주위를 산책하는 사람들, 사진을 찍는 가족들로 잔잔한 활기가 느껴졌다.
밤이 되면 공원에 조명이 하나둘 들어오며 얼음 조각과 설경이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사람들이 조용히 웃으며 걷는 모습,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벤치에 앉아 있는 커플들, 그리고 공원 중심의 TV타워에서 바라본 전경까지. 도시 중심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고요할 수 있다는 게 삿포로의 매력이었다.
삿포로 맥주 박물관 – 홋카이도 하면 맥주지!
삿포로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바로 삿포로 맥주 박물관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브랜드 중 하나인 ‘삿포로 맥주’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 공간은, 단순한 전시가 아닌 지역 산업과 문화의 결합체처럼 느껴졌다. 붉은 벽돌 건물 자체도 멋스럽고, 내부 전시는 간결하면서도 알차다.
박물관 투어 후에는 시음 코너에서 갓 따른 생맥주를 한 잔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박물관 옆 ‘삿포로 맥주 정원’에 있는 식당에서는 홋카이도의 명물 요리인 징기스칸을 즐길 수 있다. 숯불에서 구운 양고기에 맥주 한 잔, 그 순간만큼은 삿포로의 겨울 추위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모이와 산 – 눈과 불빛이 만난 야경
삿포로의 밤을 특별하게 마무리하고 싶다면 모이와 산 전망대를 추천한다. 시내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길은 꽤나 낭만적이고, 정상에 도착하면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불빛으로 수놓인 도심과 그 너머로 이어지는 설산,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이시카리만(石狩湾)의 곡선까지, 삿포로가 지닌 입체적인 매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전망대 한 켠엔 ‘사랑의 종’과 자물쇠 공간도 마련돼 있어 많은 연인들이 찾지만, 혼자여도 그 풍경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고요한 공기 속에 서서 시내를 바라보는 그 시간은 여행 내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였다.
라멘 골목 – 뜨끈한 미소라멘 한 그릇
추운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유독 ‘따뜻한 국물’이 간절해진다. 그래서 마지막 날, 꼭 먹고 싶었던 게 바로 삿포로 미소라멘이었다. 라멘 요코초(ラーメン横丁)라 불리는 라멘 골목엔 오래된 가게들이 쭉 이어져 있었고, 그중 한 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된장 베이스의 진한 국물, 탱탱한 면발, 고소한 차슈, 그리고 아삭한 숙주가 어우러져 한 그릇 안에 홋카이도의 온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짧은 일정 중 가장 따뜻한 식사였다. 라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들러보길 추천한다.
삿포로, 여행자의 속도를 존중하는 도시
✔︎ 다녀와서 느낀 장점
- 도심은 도보와 지하철로 충분히 이동 가능
- 눈길이 많아 미끄럼 방지 신발이나 아이젠 필수
- 현지인들 친절하고, 혼자 여행해도 부담 없는 분위기
- 먹거리 만족도 높음 – 라멘, 맥주, 징기스칸 모두 훌륭
✔︎ 근교 여행도 꼭 챙기자
삿포로만 보기엔 살짝 아쉬울 수 있다. 오타루 운하의 로맨틱한 거리, 조잔케이 온천의 따뜻한 물길, 비에이와 후라노의 들판은 계절마다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추천 코스다.
삿포로는 ‘다시 가고 싶은 도시’
화려하진 않지만 은근히 오래 기억에 남는 도시, 삿포로. 길을 걷는 속도도, 식사를 즐기는 시간도 느릿하게 흘러간다. 단순히 명소를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닌, 도시의 공기와 기온,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여행을 원한다면 삿포로가 딱이다.
눈 내리는 거리에서 커피 한 잔 들고 걸었던 그 순간들, 라멘 그릇 속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그 장면, 그리고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빛의 도시. 삿포로는 분명 나에게, 또 많은 이들에게 오래도록 남는 이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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